EP 1.  Metaphysics
04.png
있음이란 무엇인가

 형이상학(Metaphysics)은 철학의 최고 핵심적인 분야로서 「 있음 」 에 대하여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 우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만약에 무언가가 없다라고 한다면, 없음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둠이 존재하는 것은 그 어둠 자체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빛이 부재하기 때문에 어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빛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둠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없음이라는 것은 있음의 부재일 뿐이므로, 우리는 있는 것에 대해서만 논할 수가 있는 셈이다.
이렇듯 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비록 명확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무언가가 있다라고 가정할 수 밖에 없으며,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으므로, 있음에 대한 탐구는…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 되는 제 1철학이 된다. 또한 있음에 대하여 탐구하기에 이를 존재론(ontology)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왜 있는 것일까, 없을 수도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있는 것일까? 이제는 있음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있음의 원인이란, 있음을 있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진정한 있음으로서, 있음의 배후에 존재하면서도, 있음을 형성하는 원리이자, 있음의 시작이 되는 것이며, 영원한 있음으로서의 있음이며, 있음의 궁극적 본질이자, 있음의 근원이 되는… 진정한 실체(substance)를 가리킨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위와 같은 존재를 사람들은 '신' 이라고 불러왔다. 즉 있음의 원인을 탐구한다는 것은,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나아간다는 것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아니하다. 신학이 신의 존재를 가정한다면, 철학은 (있음의 원인자) 실체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철학이 쇠퇴함에 따라, 이러한 실체에 대한 탐구는 어느덧 과학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과학은 다시 한번 있음의 원인을 가정하여, 자신들이 그 원인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을 하고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인류는 단 한순간조차 (있음의 원인자) 신에게서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공포이자 악몽이란 말인가. 이렇듯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있음과 그 있음의 원인을 탐구하는, 있음 그 자체에 대한 학문임을 기억하라.

 자, 이제 우리는 다시 물음을 던질 차례이다… 있음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궁극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있음은 언제나 「 인식 」 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있음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을 테니까.
렇기에 있음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음의 철학이 선행되어야 한다.
EP 2.  Epistemology
02.png
 인식론(Epistemology)은 형이상학과 더불어 철학의 핵심을 담당하는 분야로서 「 인식 」 에 대하여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식이란 무언가에 대한 앎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형태로든 무언가를 인식했다면, 그것은 앎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참된 앎인가와는 별개의 문제로서, 우리의 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불완전하기에, 무언가를 인식하고도 거짓된 앎을 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짓된 앎과 참된 앎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참된 앎' 에 한정하여… 그것을 지식 (Knowledge) 이라고 정의한다.

 지식의 종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선험지식(a priori)과 경험지식(a posteriori)
선험지식이란, 경험에 선행하다라는 의미로서 경험이 필요없는 지식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직선은 무한하다' 라는 지식은 경험이 필요없는 지식이다. 왜냐하면 직선이라는 주어가 무한하다라는 술어의 의미를 포함하는 종속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인데, 이 종속관계에 의해 선험지식은 필연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필연성 (모든 가능세계에서 항상 참) 을 갖기 때문에 경험에 선행하는 것이며, 경험 없이도 성립하는 지식이다. 이러한 선험지식으로는 수학이나 논리학처럼 가상적인 지식들이 해당하게 된다.
반면에 경험지식이란, 말 그대로 경험이 필요한
 지식으로서, 이를테면 ' 지구는 둥그렇다' 라는 지식은 경험이 필요한 지식이다. 왜냐하면 지구라는 주어가 둥그렇다 라는 술어의 의미를 포함하지 못하는 독립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인데, 이 독립관계에 의해 경험지식은 우연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연성 (모든 가능세계에서 일부 참) 을 갖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확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경험적 확인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지식이다. 이러한 경험지식으로는 과학처럼 현실적인 지식들이 해당하게 된다.
고로 선험지식과 경험지식은, 단순히 경험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이 필연이냐 혹은 우연
이냐에 따른 구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지식의 정의가 '참' 된 앎이며, 지식의 구분이 필연성과 우연성 (모든 가능세계에서 항상 '참' / 일부 '참') 이라면 도대체가 '참'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문제이다. '참' 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내부에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나의 외부에서 존재하기도 한다. 나의 내부에서 존재하는 참은 선험지식이 되었으며, 나의 외부에서 존재하는 참은 경험지식이 되었다.
그러 잘 생각해 본다면, 참은 언제나 나의 내부에서 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설령 나의 외부에 어떠한 절대적인 참의 기준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참인지 참이 아닌지, 최종적인 판단을 거치게 되는 것은 나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내부작용을 논하지 않고는 참이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듯 나의 내부에서 존재하는 최종적인 참의 판단 기준… 우리는 그것을 직관(Intui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 직관 」 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철학이 선행되어야 한다.​​
EP 3.  Logic
03.png
 논리학(Logic)은 그 자체로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철학의 토대를 형성하는 방법론으로서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논리학 없이 철학을 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며, 논리학이란 생각의 법칙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올바른 이성의 사용법을 제시하고, 타당한 논증의 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논리학은 매우 「 직관적인 」 자명한 법칙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를테면 명제 p가 True 혹은 False의 진리값 중 하나만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비모순율(Law of noncontradiction 이하 LNC)은 고전 논리학의 대표적인 법칙으로서, 항상 자명하다고 간주되어져 왔다. 그러나 현대 논리학에 이르러, LNC가 반드시 자명할 필요성은 없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LNC를 허용하지 않는 초일관 논리(paraconsistent logic)가 등장하게 된다.
고전 논리학에서 LNC를 허용했던 이유는, 인간의 내부에서 존재하는 판단 기준… 논리적 직관(Intuition)에 의거하여, 그것이 자명한 선험지식(필연성)이라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초일관 논리의 견해처럼 LNC가 외부로부터의 자명하지 않은 경험지식(우연성)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논리학이 생각의 법칙에서 초월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논리적 직관(Intuition)이 선험적인지 경험적인지는 논리학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논점이 될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 주체의 관점에서, 정말로 인간의 내부에 초월적이며 선험적인 직관(Intuition)이 존재하는가? 에 대한 궁극적 물음이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앞서 우리들은 형이상학적 「 있음 」 의 실체를 밝히기 위하여, 인식론적 「 지식 」 의 실체를 밝히려 퇴행하였고, 다시 인식론적 「 지식 」 의 실체를 밝히기 위하여, 논리학적 「 직관 」 의 실체를 밝히려고 퇴행하는, 무한퇴행을 거치고 있다. 따라서 나는 논리학적 직관이 선험적인가 경험적인가에 대한 문제를 논함으로서,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열쇠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직관(Intuition)의 문제는 수리철학(mathematical philosophy)과도 관련성이 깊으며, 수학과 철학은 전통적으로 밀접한 논리구조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된다… '직관은 망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이를 논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최종적인 학문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가치론(Axiology)은 지금까지 말한 내용들을 종합하는 학문으로서, 공리(Axiom)에 대하여 탐구하는 학문이다. 공리란, 참이라고 확신해도 될 만큼 자명한 명제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내가 존재한다' 라는 명제는 참이라고 확신해도 될 만큼 자명한 명제이다. 그리고 이렇듯 자명하다고 여기게 된 근거로는, 오로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판단의 기준이었던 직관(Intuition)에 의거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하였듯, 직관은 선험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직관으로부터 파생된 공리 또한 자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공리로서 존재 '해야(Sollen)' 한다는 말인가.